또 한 번의 불패 신화, 현대 그랜저 시승기

국내에서 그랜저라는 브랜드 파워는 참으로 대단하다. 차량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사전계약은 이미 역대 최고를 갱신했고,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도로는 신형 그랜저로 물들고 있다.(하지만 이미 절반은 택시와 렌터카) 그랜저는 6세대 출시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고, 이번에도 역시 실패가 아닌 역대급 사전계약으로 순조로운 출발을 알린 신형 그랜저를 만나봤다.



6세대 그랜저는 5세대와 완전히 다르게 젊어졌고, 진보적이다. 그래서 기존의 그랜저 디자인을 선호하던 연령층에서는 너무 과하게 젊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맞다. 굉장히 젊어졌다. 정면에서는 U자형 주간주행등을 사용하면서 공기흡입구를 연상케 하는 범퍼 디자인을 사용했고, 크롬도 곳곳에 사용했다. 후면에서는 과감하게 테일램프를 이어 버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디자인만 과감해진 것이 아니다. 사이드미러는 마치 예술작품처럼 얇은 지지대에 올려져 있는 듯하게 표현했고, 도어 핸들도 투박하게 크롬 덩어리 대신 일부만 포인트로 활용했다. 전면 범퍼 하단과 테일램프 하단에도 역시 크롬을 사용하면서 차량의 고급감과 역동성을 적절히 조율했다.




하지만 새롭게 사용된 캐스캐이딩 그릴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크레스트 그릴과 차별화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현대차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다름을 확실하게 강조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자인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허점을 노리고 있는 듯하다.




테일램프는 타 브랜드와 유사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게 비슷하지도 않다. 나름 그랜저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래지향적으로 잘 풀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게감을 조금 더 부여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긴 하다. 또 보조제동등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돼지꼬리처럼 짧아졌다. 과연 고급 세단을 추구하는 차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원가 절감이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5세대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짧아졌다.




도어가 묵직하게 열리는 건 아니지만, 도어 안쪽이나 스티어링 휠 중앙까지 감싸진 가죽들의 질감이 너무 부드러워서 첫 느낌은 나쁘지 않다. 다소 촌스러운 우드를 억지스럽게 사용하지 않은 것도 좋고, 이런 부분들에서 많이 젊어졌다는 느낌이 다시 한번 전달된다. 하지만 중후한 우드 장식이 없어서인지 그냥 조금 고급스러운 쏘나타 같은 느낌도 짙다.





계기반은 깔끔하게 정돈됐으며, 각종 버튼들도 아주 직관적이게 배치됐고, 편리하게 구성됐다. 스티어링 휠의 리모컨 버튼들은 다소 많지만 그래도 나름 정돈을 잘 했고, 변속기를 이동할 때의 느낌도 제법 괜찮다. 터치스크린에서도 날짜와 시계를 표시하고 있는데, 굳이 어색한 시계는 왜 있어야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고 디자인을 망치고 있다. 고급스럽지도 않고, 시인성도 떨어져 운전자 입장에서는 여려 모로 쓸모가 없다. 물론 임원급에서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아주 좋아졌다. 속도와 내비게이션 표시는 물론이고, 각종 표지판까지 띄워준다. 내비게이션이나 터치스크린의 그래픽은 단연 최고, 모바일 내비게이션을 제외하고는 만족감이 가장 높은 내비게이션 중 하나다. 멀티미디어 조작 버튼들은 센터페시아에 없지만 터치스크린과 스티어링 휠에서 모든 조작이 가능해서 편하고, CD플레이어도 빠뜨리지 않고 암레스트 안쪽에 준비해놨다. 개인적으로 JBL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랜저의 JBL 사운드 시스템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이 부분에도 원가절감이 이뤄졌는지 지극히 무난한 음질을 구현한다.

   




조수석에는 워크인 디바이스라고 하는 기능이 추가되어 있어서 시트 옆으로도 버튼이 위치하고 있다. 조수석 탑승객이 잠을 자고 있다면 살며시 눕혀줄 수 있고, 뒷좌석 탑승객을 위해 시트를 앞으로 당길 수 있는 매너도 보일 수 있다. 뒷좌석은 딱히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편하고, 암레스트도 커서 제법 자세가 나온다. 하지만 운전 시트는 고속도로를 2시간만 운전해도 허리가 아플 정도로 안락함이 떨어진다. 요추 받침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불편하다.

   



시승차는 3.0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이다. 가솔린 엔진은 원래 조용하기도 하지만 6기통답게 조용하다. 골목 같은 곳에서 저속으로 주행하거나 신호대기 시 공회전을 하고 있으면, 엔진룸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시승차에는 이중 접합유리가 적용되어 있어서 고속 주행 시에도 소음이 적은 데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까지도 아주 잘 억제해주는 모습을 보여 N.V.H만큼은 정말 수준급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스펜션이나 스티어링 휠의 세팅은 편안하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잔 충격이나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때의 감각도 아주 좋다. 5세대보다 단단해진 감각도 아주 좋고, 그 덕분에 안정감도 향상됐다. 하지만 편안함 딱 거기까지. 주행모드는 스포츠로 바꿀 수 있지만, 스포티한 느낌만 내주는 것이지 실제로 스포츠 주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스펜션이나 스티어링 휠로 전달되는 느낌이 크게 변하지는 않고, 디자인에서 보여줬던 것과 달리 편안함에만 집중되어 있다.



3.0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266마력, 최대토크 31.4kg.m을 발휘한다. 전륜구동 모델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타기 적당한 정도의 출력이다. 반응이 민감하거나 재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연흡기 엔진의 특징을 살려 아주 부드러운 질감이 매우 편안하다. 고속에서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크게 없고, 폭발적인 감각은 아니지만 꾸준히 가속된다. 그나마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기본 RPM 회전수가 높아져 보다 빠른 가속이 가능해지고, 엔진음도 제법 커지지만 역시 스포츠 모드라고 하기엔 약간 김이 빠진다.



이런 주행감성은 스포티한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디자인은 발전했는데, 주행감성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시대의 변화와 젊어진 감각에 맞춰 2리터 터보 엔진을 투입해서 출력을 끌어내고 여유로운 토크까지 적절히 활용하면 어땠을까 싶다. 3.0 모델이 이 정도인데, 200마력도 안 되는 2.4 모델은 당연히 답답함이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라리 i30처럼 다운사이징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면 모두 해결되고도 남았을 듯 문제인데, 디자인만 빼고 모든 게 너무 보수적인 게 아쉽다. 차라리 그럴 것이면 디자인도 중후하고 보수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손발이 안 맞는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쏘나타보다 고급스러운 차종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그래서 그랜저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연령층도 젊어졌고, 그랜저 위로는 아슬란도 있으니 그랜저가 젊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디자인과 성능이 조화롭지 못한 것은 계속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경쟁사에서 SM6 같은 모델을 출시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도 판매량은 동급 최고를 기록하겠지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에서 인정 받으려면 콘셉트가 좀 더 명확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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