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출시되지 못했던 비운의 그랜저 AMG

메르세데스-벤츠는 우리에게 독일산 고급차라는 이미지를 심어놨다. 그 고급차의 상징을 더욱 넘사벽으로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AMG 라인업이다. AMG는 벤츠의 대표적 튜닝 전문 라인이자 괴물 같은 성능의 엔진을 만들기로 유명한 고성능 전문 서브 브랜드다. 현재 AMG는 벤츠의 차량을 튜닝해 주는 수준을 넘어 개발 단계부터 벤츠 본사와 함께 모든 것을 주도하는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AMG가 다임러 그룹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다양한 제조사에 튜닝버전을 제공했다. 국내에도 그랜저에 입혀져 판매되었던 적이 있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미쯔비시와 현대자동차가 협업하여 탄생시킨 2세대 데보네어 모델이 바로 초창기 그랜저 모델이었는데, 흔히 각 그랜저라 불리는 모델이다. 이 모델에 AMG의 심장이 이식되었던 때가 있었다.


역대급 기함 그랜저의 탄생

현대자동차 브랜드의 기함이라 불리는 그랜저는 대한민국 고급 승용차의 선구자로 불리던 모델이다. 비록 현재는 상위 모델들이 나오면서 포지션이 바뀌어 급이 낮아지기 했지만, 과거에는 대한민국이 부유층과 최상류층들이 타는 쇼퍼 드리븐 카의 대명사였다. 



그랜저는 현대자동차의 전륜구동 준대형 세단으로 1986년 첫 선을 보이게 된다. 각 그랜저라 불리던 1세대 모델은 미쓰비시 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협업으로 개발되었다. 디자인은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하고 설계는 미쓰비시가 담당했다. 이러한 협업으로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똑같은 디자인의 차를 팔면서도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판매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랜저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일본에서는 데보네어 V로 출시했다. 미쓰비시의 데보네어로 세대를 따지자면 2세대의 모델인 것이다. 미쓰비시의 데보네어는 1960년대부터 판매하던 모델이었는데 현대차와의 협업으로 2세대가 탄생하기 전까지 22년 동안 디자인이나 기본 설계가 바뀌지 않은 차량이다. 사골 신세를 면치 못했던 1세대 데보네어는 토요타 크라운에 밀려 판매량이 저조한 시기를 맞고 있었다.



때문이 1세대를 대신할 신차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미쓰비시는 신차 개발에 대한 비용 부담이 컸던 탓에 당시 미쓰비시로부터 자동차 기술을 배우고 있던 현대자동차에 접근해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마침 현대자동차도 당시에 팔던 그라나다가 끝물인데다가 서울 올림픽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급차를 내놓고 싶어 했고 두 회사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서 2세대 데보네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탄생한 데보네어 2세대는 1986년 7월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도 실내공간을 늘리기 위해 앞 엔진 전륜 구동 설계를 도입했으며, 엔진으로는 미쓰비시 최초의 6기통 엔진인 6G71 2리터와 6G72 3리터 사이클론 엔진을 사용했다. 6기통 엔진을 장착한 첫 세대이기 때문에 데보네어 V라는 명칭이 붙었고 보닛 엠블럼에도 V자 형상이 적용됐다. 트렁크 구조 역시 새로운 설계를 도입해 골프백 2개를 넣을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해 부유층이 타는 활용도 있는 차량으로 탈바꿈 시켰다.



1987년 2월에는 2리터 엔진에 슈퍼차저를 추가했으며, 세계 최초로 니들 롤러 로커 암을 적용했다. 초기 그랜저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국과 달리 판매량이 저조했던 일본에서는 1987년 초반에 데보네어의 스트레치 리무진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모델은 미쓰비시에서 전장을 60mm가량 늘려 수제작해 아이치 대리점에서 판매했다.


1989년 가을에는 6기통 3리터 엔진에 트윈캠 구조를 추가해 밸브 수를 24밸브로 늘려 출력을 개선했다. 이 엔진은 데모네어 AMG에서도 쓰이게 된다. 


그랜저는 한국 시장에서 등장하자마자 대우 로얄살롱 슈퍼를 밀어내고, 대형차 시장의 왕좌를 차지했다. 1987년 기준으로 총 6,250대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사람들은 크라이슬러와 같은 모습을 한 고급차라는 이미지로 평가했다.


반면 데보네어는 일본에서 판매가 부진했는데, 당시 토요타 크라운과 닛산 세드릭 등 경쟁 차량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당시 건국 이래 가장 호화롭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들도 차를 구입해 끌고 다녔다. 젊은이들은 소위 꼰대 이미지의 자국 대형 차보다는 BMW3시리즈나 벤츠 190E와 같은 준중형 외제차를 선호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쯔비시는 판매 부진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각 그랜저에 AMG를 입히다.

미쯔비시는 자국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황에 반전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데보네어의 판매량 회복을 위해 AMG 버전 등 여러 특별 사양들을 추가하기에 이른다. AMG는 다임러에게 인수되기 전, 메르세데스-벤츠 외에도 뜻이 맞는 여러 제조업체들과 함께했는데 미쯔비시와의 작업 중 하나를 데보네어를 통해 진행했다.


데보네어 V 로열 AMG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 차량은 1990년 10월에 공개됐다. 데보네어 V라인업에서 주문생산한 모델로 AMG의 에어로 파츠를 장착한 버전이다. 기본형에서 전장을 150mm 늘려 전장x너비x전고가 각각 4860x1725x1425mm에 달했다. 휠베이스는 2735mm였으며 차체 무게는 1620kg의 미드 사이즈 보디로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AMG에서는 에어로 파츠만 튜닝하였고, 퍼포먼스 부분은 튠업을 하지 않았다. 엔진은 미쯔비시의 6기통 3리터 DOHC 24V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최고출력 200마력이었다.  최대토크는 27kg.m, 연비는 리터당 7.9km로 굉장한 스펙은 아니지만, 당시 스포츠 세단으로써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데보네어 V AMG는 풀라인이 만들어진 차량이 아닌 스페셜 모델답게 주문생산 방식의 차량이었다.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차량은 일본에서 주문되었던 차량을 국내로 수입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천만 원이 넘어가면 고급차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는데, 데보네어 AMG의 가격은 당시 500만 엔, 당시 환율로 약 3천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스포츠 세단의 떨어지는 기호성과 AMG의 낮은 인지도로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다.



미쓰비시와 현대차의 갈라진 운명

2세대 데보네어가 일본 내에서 잘 안 팔리자, 미쓰비시는 후속 차량을 준비하게 된다. 3세대에도 현대차와 공동 개발을 추진했고 1992년 10월에 출시했다. 당시 미쓰비시의 뛰어난 기술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거리 감지 시스템이 3세대 데보네어에 적용되었다. 차량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준이었지만 시대적으로 앞서는 기술이었다. 3세대가 되면서 국내에서는 뉴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여 판매되었다.


이 시점부터 미쓰비시 데보네어와 현대 그랜저의 운명이 갈리기 시작한다. 고급차 이미지가 약했던 미쓰비시의 차량은 버블 붕괴 직후였던 시기를 만나 잘 팔리기 어려웠고, 결국 데보네어는 3세대를 끝으로 단종된다. 반면 88서울 올림픽 이후의 경제 붐과 함께 현대차의 뉴 그랜저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따라서 그랜저 시리즈는 현재까지 모델이 체인지 되면서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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