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잘 모르는 기아차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7가지

지난 4월 기아자동차는 전년 동기 대비 9.3% 성장해 20개월 만에 최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내수 판매량이 5만 대를 넘어섰고, 해외 판매도 19만 대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금은 기아자동차보다는 현기차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독자 기술과 차량 개발에 앞장서 온 ‘기술의 기아’라는 별칭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아차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는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기술의 기아, 최초 개발

기아차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기술 개발에서 최초라는 기록들을 세웠다. 1973년 최초의 국산 승용차 브리사가 출시되는데 오늘날 흔히 알려진 포니보다 약 3년 앞서 판매되었다. 마쓰다 패밀리아를 베이스로 하였지만, 초기 부품의 국산화율을 60%까지 이뤘고, 후속 모델에 이르러서는 90% 이상 달성한다.




1992년 출시된 세피아는 당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외국 차량을 라이선스 형식으로 도입하는 데 그쳤던 것과 달리 플랫폼과 엔진, 독자적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완전 자체 개발에 성공하고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는다. 국내 최초 차체를 독자 개발한 모델로 알려진다. 같은 세피아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포티지는 도심형 콤팩트 SUV라는 장르를 최초로 개척한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1994년 시판된 그랜버드 버스는 독자적인 디자인을 적용해 대한민국 상용차 최초로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굿 디자인상을 수상한다.


파리-다카르 랠리 완주와 WRC 우승

자동차 랠리는 열풍이 몰아치는 사막과 산악 지대 등 온갖 험로로 이뤄진 수천 km 코스를 밤낮없이 달리는 자동차 경주 가운데 하나다. 그중 하나인 파리-다카르 랠리는 경기 참가자와 관전자 수십여 명이 생명을 잃는 사고가 다수 발생하여 ‘죽음의 랠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1988년 ‘랜드마스타’라는 특수 제작 차량으로 국내 최초로 국제 랠리에 참가하였다. 비록 첫 참가에서 완주는 못했지만, 1993년 1월 스포티지로 완주에 성공한다. 같은 해 7월 시판된 스포티지는 랠리 완주를 통해 주행성능과 내구성이 검증된 차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판매하게 된다. 



월드 랠리 챔피언십 WRC는 1년 동안 13개 국가에 마련된 다양한 구간을 주행하고 각 구간마다 점수를 매겨 종합적인 평가를 하는 경기다. 1995년 호주 랠리에서 세피아가 비개조 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KIA에 담긴 다양한 의미

기아자동차의 영문표기 방식은 ‘작전 중 사망’을 일컫는 군사용어 K.I.A.와 유사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식 표현에서도 굶주림을 뜻하는 단어와 표기법이 동일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고 평하기도 한다.



기아차는 1952년 경성정공에서 기아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로 ‘기아’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일어날 기(起)와 버금 아(亞)로 된 한자의 의미로 해석하자면 ‘아시아에서 일어나다’ 혹은 ‘으뜸이 되다’ 정도의 뜻을 담고 있다. 자동차 구성요소인 기어(gear)의 한자식 발음이기도 하다.



아시아 자동차가 포함된 기아 그룹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아시아 자동차는 1964년 자동차 공업 보호 육성법 마련에 따라 설립된 자동차 회사다. 경영 부실로 1976년 기아그룹에 인수되면서 주로 승합차와 버스, 트럭 등을 생산하게 된다. 연식이 아주 오래된 타우너나 콤비, 코스모스 같은 차량에서 아시아 자동차 엠블럼을 발견할 수 있다.



1997년 부도가 발생하기 전까지 기아자동차는 28개 계열사를 보유한 그룹이었다. 1998년 현대자동차에 매각되면서 기아자동차 판매, 아시아 자동차, 아시아 자동차 판매, 기아대전 판매 4개사가 기아자동차로 흡수 합병되고, 2000년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 된다.


 


   

출시 못한 퓨전카들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면서 이전까지 개발 및 출시를 앞두고 있었던 퓨전 장르 차종의 개발이 취소되었다. 랠리 카로 튜닝된 랜드마스타의 시판 모델, 5인승 다목적 차량인 네오마티나, 프라이드의 마이너 체인지 모델, 푸조 806을 바탕으로 한 미니밴 프로젝트, 미니밴의 공간과 SUV의 운전 편의성을 복합시킨 ARV퓨전카, 타우너 후속 모델 등이 해당한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크로스오버 차량의 선구자적인 모델들이 다수 포함된다.


전문 경영인 체제의 발 빠른 도입

창업주 가족이 경영 일선에 나서다 1981년 10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하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다. 아시아 자동차 사장을 회장으로, 기아기공 사장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선임했으며 창업주의 아들로 회사를 맡아 운영했던 김상문 회장은 명예회장으로서 주주의 위치만을 가졌다. 




대한민국 첫 종합 자동차 공장

광명시에 위치한 기아 소하리 공장은 최초의 국산 승용차인 브리사가 생산된 공장으로 1973년 준공되었다. 수만 가지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는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 테스트 등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소하리 공장은 엔진과 차체 같은 전 부품의 자체 조달부터 최종 생산까지 일괄 체제로 이뤄진 국내 최초 종합 자동차 공장이다. 포드 자동차의 ‘페스티바’라는 차명으로 판매된 프라이드가 한국에서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소하리 공장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때, 현대자동차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기아자동차는 디자인 경영을 필두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 거두는 판매 실적들은 그러한 변화가 성공적이었음을 알려준다. 신기술을 과감히 도입하면서 한국 자동차 역사에 굳건한 발자취를 남긴 기아차동차가 앞으로도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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